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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여행기

04. 푸른발부비새와 사회적으로 무가치한 꿈

남미 여행을 결심한 것은 전적으로 이 새 때문이었다. 새를 알게된 것은 아마 스물한 살 무렵이었다. 의미 없는 웹서핑을 하다 푸른발부비새(푸른발얼가니새, Blue-footed booby)의 이미지와 마주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종류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깊고 푸른 그 발에 나는 한눈에, 완전히 매료됐다. 새는 갈라파고스 제도와 그 인근 해안에만 산다고 했다. 거기가 어디든 언젠가 꼭 이 새와 만날 거라고 다짐했다. 그때 나는 갈라파고스 제도가 어느 나라의 땅인지도 몰랐다.

 

그로부터 십수 년이 흘렀다. 꿈과 현실이 항상 대척점에 서있는 것은 아니지만 꿈보다는 현실 쪽에 걸친 발에 조금 더 힘을 실어야 하는 시간들이 많았다. 나는 현실에 충실했다. 탁하고 깊은 물에 얼굴을 묻고 잠수하듯. 시간이 흘러 되돌아보니 그런 시간들이 나를 새와 더 빨리 만나게 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새를 마음에 그리는 일은 아주 가끔씩, 단속적으로만 일어났다. 하지만 매번 아주 선명했다.

 

지독한 역병이 쇠하고 다시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어갈 때쯤 나는 다시 그 새를 떠올렸다. 비행기를 예매하고 결제 버튼을 눌렀을 때 심장이 크게 요동하는 것을 느꼈다. 짝사랑을 6개월을 지속하면 그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열망이 내내 커지지만, 6년을 지속하면 방향을 잃고 그 자체로 이미 흔한 일상의 일부가 될 테다. 어쩌면 그 사람보다는 짝사랑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 어릴 적 사랑 같던 새와 진짜로 만나게 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날 반긴 이구아나
섬에 들어가면 입도비 100달러를 내야 한다. 그리고 아마 그때 받은 할인권. 사용하지 않고 핸드폰 뒤에 끼워서 보관하고 있다.
길에서 잠자고 젖먹이는 바다사자들
작은 수산시장
떡고물을 노리는 시장의 새들
뒤에 다 이구아나!

 

남미 여행을 계획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계방향으로 여행을 계획한다. 내 계획은 반시계방향이었다. 에콰도르 - 페루 - 볼리비아 - 칠레 - 아르헨티나 - 브라질이 내 여행 루트였다. 계획을 느슨하게 세우고 도중에 더 좋은 곳이 생기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새를 보는 일정에 차질이 생겨서는 안 된다. 이것이 내가 에콰도르를 맨 첫 번째 여행지로 정한 이유다.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이자 첫 번째로 머무른 산타크루스 섬에서는 새를 볼 수 없다. 새를 보기 위해 North seymour island로 가는 배에 올랐다. 야닉Yanik 형을 만나 친해진 것도 이 배 위에서였다. 스위스의 철도회사에서 일하는 형은 수 년 동안 한 번도 휴가를 쓰지 않고 모으고 모아서 여행길에 올랐다고 했다. 나는 내 여행의 이유를 형에게 설명했다. 새의 사진을 찾아 보여주었다. 그날 처음 신은 푸른색 신발을 높게 들어올리며 신나서 떠들었다. “이것 봐요, 옷도 맞춰입고 왔어요.” 형은 나보다 더 맑게 웃었다.

 

스쿠버다이빙을 하면서 North seymour island에 새가 많다는 정보를 입수
숙소 냥이

새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이 가장 높은 곳이 이 섬이라고 했지만, 막상 도착해서 한참을 걷고 돌아도 새는 한 마리도 마주하지 못 했다. 가이드에게 묻자, 요새는 시즌이 아니란다. 아마 못 만날 확률이 높단다. 새를 만나는 것도, 만나지 못 하는 것도 모두 여행의 일부다. 세상이 내가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건 익숙한 사실이다. ‘어쩔 수 없는 거야,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렇게 입 끝으로 중얼중얼 되뇌었다. 6개월을 쫓아다닌 첫사랑에게 처음 거절 당한 그날도 그랬다. 괜찮아, 괜찮아, 스스로를 다독이려 애썼지만 답답한 가슴은 영 내 편이 아니었다.

 

정작 내가 찾던 새는 못 보고...

 

섬의 8할 이상을 돌았을 때, 야닉 형이 작게 나를 불렀다. “저깄다.” 손가락 끝이 향한 곳에는 첫사랑보다 예쁜 새가 바위 위에 앉아있었다. 나는 앞뒤 생각도 못 하고 새한테 달려가다가, 돌아와서 형에게 핸드폰을 쥐어주고 다시 새 쪽으로 달려갔다. 형은 내 핸드폰으로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주었다. 핸드폰으로는 역시 결과물이 썩 좋지 않아, 나는 조심스레 형이 갖고 있던 카메라로 찍어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형은 본인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잊고 있었던 것마냥 크게 놀라면서 다시 정성스레 사진을 찍어주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지나치게 당당해 미친놈 같은 부탁이었지만, 어렵게 잡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형이 찍어준 사진은 그저 아름다웠다. 까만 테두리의 액정 안에는 행복해하고 설레하는 내 표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저 막연히 상상만 해온 일이었다. 지나치게 막연해서 정말로 이루어질 거라고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던 그 일이, 지금 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 성취가 사회적으로는 어떠한 평가도 받지 못 하는 하잘것없는 일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더 멋지게 느껴졌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해봤자 별 득도 되지 않는 일을 오랜 시간 동안 마음에 담아오고 실행에 옮긴 내가 자랑스러웠다.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지는 못 한 사상(?)이지만, 나는 돈은 불행에 관여하고, 행복에 관여하는 것은 쓸모없는 것들이라고 줄곧 생각해왔다. 돈은 불행을 막아주는 것에는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 하지만 일정 이상으로 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사회적으로 무가치한 쓸모없는 것인 경우가 많았다. 어느 초등학생이 그의 시에서 썼듯이, 햇살, 바람, 쪼그려앉아 개미를 구경 하는 일도 다 그렇지 않은가.

 

이 사진은 오래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날 것 같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표현을 동원해서 감사를 전했다. 시장에 가서 엠빠나다와 곱창을 두고 맥주를 나눠마시고 밤거리를 걸었다. 이것을 계기로 형과 나는 갈라파고스에서 남은 일정을 같이 하게 되었다. 나는 형을 따라 이사벨라 섬으로 갔다. 산타크루스 섬보다 조용하고 목가적인 그곳에서는 매일매일이 느슨했다. 형과 나는 해변 위에 늘어지듯 앉았다. 걱정 없이 여행을 다닐 수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 했다. 특권을 부여받은(Privileged) 삶에 감사하는 방법, 돌려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얼마나 여행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남자들의 이야기가 흔히 그러하듯 좋아하는 이성상에 대해 말하고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해대며 낄낄거렸다. 맥주잔 너머로 노을이 번졌다.

 

 

남미 시장도 곱창 쫌 침
슬랙라인 하는 사람
자기도 해보겠다고 하는 형
난 그런 거 잘 모르겠고~
술에 많이 취했는지 밥먹다 자는 아저씨
택시가 안 잡혀 2달러로 히치하이킹
이사벨라 섬에서 빠져나온 날
또 만나요 고마운 야닉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