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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여행기

05. 국제 언어로써의 영어와 깊어진다는 것

 

키토 시티 투어 중에 만난 사람들
적도선에서 만난 뽀뽀하는 커플

이전의 마지막 여행지는 태국 - 라오스 - 베트남의 동남아 3국이었다. 그로부터 약 3년이 흘렀다. 그동안 여행을 다니지 못 한 건 물론이고, 사적으로 영어를 할 기회도 별로 주어지지 않았다. 직업상 얼굴을 맞대고 영어를 해야 하긴 하지만, 정해진 비즈니스만 처리하면 되니 스피킹에 큰 도움이 되진 않는다. 화학제품운반선의 항해사와 육상 관계자 간의 업무가 언제나 나이스하게 이루어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 사담을 깊게 나눌 기회도 별로 없다. 요는, 마지막 여행으로부터 지금까지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딱히 내 영어 스피킹이 성장할 만한 기회가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날씨, 냄새, 음식, 소음…. 여행자들에게 여행을 실감나게 하는 것이 무어냐고 물으면 여러 대답이 나오겠지만, 나에게는 그 나라의 말이나 영어를 하는 순간이다. 그러니까 보통은 외국의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심사관과 대화를 하는 때. 그때부터 나는 생글생글 넘쳐오르는 미소를 참을 수 없게 된다. 내가 그 나라의 언어나 영어를 잘하고 못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나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일 그 자체가 좋다. 일상에서라면 만나기 어려웠을 각국, 각층의 사람들과 맥주 한 잔 놓고 정해진 주제없이 느긋이 주절대는 것이 좋다.

 

3년 간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영어가 이전 여행 때보다 나아진 것을 느꼈다. 부러움은 접어두어도 된다. 내 영어는 액정 안의 사람들이 구사하는 유창하고 팬시한 그런 프랑스 요리 같은 영어보다는 구수한 차돌된장찌개 같은 영어에 가까우니까. 다만 그 구수한 된장찌개로라도 부끄러워 하지 않고 계속 추라이 추라이 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딱히 훈련을 하지 않았는데도 왜 영어 실력이 좋아졌을까, 하는 의문을 계속 품고 있다가, 이전 포스팅에서 이야기 했던 야닉Yanik 형이랑 대화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당연히도 내 영어는 사실 퇴행 했거나, 잘 쳐줘도 제자리 걸음이겠지만, 어쩌면 그동안 시간이 흐르면서 더 많은 경험이 쌓이고, 남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져서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와카치나 사막

 

에서 점프하는 나. 나 좀 뛰는 거 같다, 같이 구경하던 사람이 찍어줌

 

사막 개
사막 냥이와 숙소 직원

 

일본으로 취직하기 전에 호주에서 3개월 동안 영어를 배웠던 때의 일이다. 나는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 모두를 훈련하는 프로그램을 듣고 있었다. 같은 학급의 스페인어를 쓰는 친구들의 말하기 실력은 당시 나에겐 거의 완벽에 가깝게 느껴졌다. 외교적으로 말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만, 일상 회화는 막힘 없이, 나처럼 어순을 계산하고 재조합 하는 과정 없이 물흐르듯 말하는 것을 보며 참 부럽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쓰기, 작문 시간에는 상황이 좀 달랐다. 주어진 주제와 시간에 맞춰 작문을 끝내고 채점을 마치고 나면 최고점을 받은 것은 항상 내 글이었다. 처음에는 친구들도 나도 영문을 몰랐다. 쉬는 시간에 다 같이 떠들 때는 그 차이가 명확한데, 작문 시간에만은 그 반대의 결과가 나오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가까운 친구는 내가 사기라도 친 게 아니냐며 깝죽댔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알게 됐다. 친구들과 나의 영어 실력의 차이가 작문 시간에만 갑자기 좁혀진 것도 아니고, 내가 사기를 친 것도 아니었다. 난 그저 어릴 적부터 글을 끄적대는 것이 취미였기 때문에, 작문에 익숙한 것이었다. 그걸 그냥 영어로 한 것 뿐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느낀 것도 똑같다. 내 영어는 아마 늘지 않았다. 대신 경험 더 깊고 넓어졌다. 나는 그전의 나보다 딱 3년 치 더 기뻐보았고, 더 웃어보았고, 더 울어보았고, 더 슬퍼보았고, 더 화내보았다. 그리고 그만큼 좀 더 여러 사람의 많은 상황에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그냥 영어를 할 때 느껴졌을 뿐이었다. 매일 쓰는 한국말을 할 때는 딱히 자각할 일이 없었지만, 오랜만에 쓰는 영어를 할 때 느껴졌을 뿐이었다.

 

 

나스카 라인, 가이드 분이 찍어주심
나스카에서 쿠스코로 가기 전에 잠시 휴식한 숙소에서, 숙소 아저씨가 찍어주심
쿠스코의 명물 12각돌, 맞은편의 가게 아저씨가 찍어주심

 

 

어릴 적 기억이다. 어머니는 아침방송에서 슬픈 사연이 나오면 빨래를 개던 손을 멈추고 티브이를 바라보면서 훌쩍훌쩍 우셨다. 나는 엄마 옆에 앉아서 같이 티브이를 보다가 엄마가 울기 시작하면 얼른 가서 휴지를 뽑아다 드리면서 말했다. “엄마, 울지 마, 왜 울어?” 울지 말라는 뜻의 왜 울어가 아니라, 나는 진짜 왜 우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어머니 당신이 겪으신 일이 아닌데, 매번 우시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작은 나는 엄마 곁에 앉아 눈물이 잦아들길 기다렸다.

 

나는 이제 당시의 어머니와 비슷한 나이가 되었다. 미디어를 보면서 우는 일이 없던 나는 제일 좋아하는 영화인 ‘인생은 아름다워’를 일곱 번째 돌려보던 날 처음으로 내 일이 아닌 일 때문에 울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 ‘TV 동물농장’을 보면서 또 울었다. 그 일 이후로 나는 “난 뭐 보면서 안 운다”는 말은 잘 하지 않게 되었다. 어머니께서 어떠한 관계도 없는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울었던 이유를 그때서야 알게 됐기 때문이다. 비단 슬픔과 같은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것 뿐만이 아니다. 경험이나 사유에 의해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은 대화에 있어서 내가 하고 싶은 말보다는 상대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하는 구석이 있다.

 

이런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여행의 큰 역할이 아닐까. 나는 앞으로도 더 깊고 넓어질 것이다. 그 방향도 지금처럼 올곧기를 바란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세간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남들이야 어쨌든 나는 예전보다는 나은 내가 되었으니까.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로 가기 전에 적어야 하는 명부, 내 이름이 떡하니
아구아스 칼리엔테스까지 3시간 동안 같이 걸은 일본 청년 류헤이 군과, 동네 꼬마. 꼬마의 어머니가 사진을 같이 찍어달라심
새해를 기념하는 모자를 쓴 예쁜 동네 소녀
리마의 볼리비아 대사관에서 만났던 싱가폴 아주머니들과 마추픽추에서 재회
볼리비아 관광 중 어떤 아주머니가 같이 사진 찍어달라셔서
우유니 소금사막 투어를 같이 한 사람들과. 이런 거 별로 찍고 싶지 않았다.
지독한 감기에 시달릴 때 날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꺼내주신 볼리비아의 명의는 아니고 명약사 분
그레이 글레이셜에서 만난 칠레 청년
카메라를 드니 포즈를 취하는 깜찍한 파타고니아 산장 직원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술먹다가 친해진 유명한 탱고 쇼 직원들
같이 사진을 찍자더니 나를 탱고 쇼에까지 초대해줌
진짜 탱고 공연 미쳤다.. 꼭 보세요. 인생의 새로운 슬롯이 열린 기분.
고마운 사람들
알고보니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엄청 유명하고 멋진 곳이라 황송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