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부는 기본적으로 '옷을 사고 싶어서' 옷을 사지 않는다. 무슨 헛소리냐고요? 선생님, 흥분을 가라앉히시고 조금만 더 들어보세요. 평소에 여러 매체를 통해서 옷에 대해 서핑을 하다가, 관심이 생기는 옷이 생기면 본격적으로 그 옷에 관해 디깅Digging하기 시작한다. 뱀부는 옷 뿐만 아니라, 소모성이 아니고 애착을 가질만한 것이면 어떤 것이든 그저 저렴한 것보다는 기꺼이 만족할만한 것을 사서 아껴주며 오래도록 내 색깔을 묻히면서 쓰는 것이 이중투자를 막는 효율적인 소비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디깅을 통해서 가급적 괜찮은 품질의 제품을 구매하려 하는 것이다. 따라서, 뱀부는 '옷을 사고 싶다! ➡️ 옷 뭐 사지?'의 순이 아닌, '** 브랜드의 ** 제품이 사고 싶어! 또는 **한 조건을 만족하는 **을 사고 싶어! ➡️ 어디서 사지?'의 순으로 의식이 흘러가는 것이다. 때문에, 부끄럽지만 뱀부는 아마도 다른 패션 블로거분들보다는 옷의 갯수가 현저하게 적을 것이다. 어떤 옷에 꽂혀야만 그걸 사는 편이고, 꽂히더라도 그걸 전부 다 구매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다만 남이 보기에 아무리 하찮고 멋없는 옷이라도 나만 좋다면 질리는 법 없이 오래오래 즐겨입는다.
이제 봄이 무르익었고, 복장이 가벼워졌다. 팬티만 입고 방구석에 누워서 엄지만 까딱거리던 뱀부는 불현듯 벌떡 일어나 소리친다. "그래! 스웻셔츠(맨투맨)를 사는 거야!" 뱀부가 사고 싶은 스웻셔츠(맨투맨)의 조건은 아래와 같았다.
- 빈티지일 것 : 현행 스웻셔츠(맨투맨)만이 가질 수 있는 이점이 별로 없었다.
- 미국제일 것 : 별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사대주의는 아니에요. 설득력은 없어 보이겠지만,,
- 빈티지의 디테일 (제법, 거셋, 소매의 형태, 프린팅, 리브, 스티칭 등) : 이 부분에 관해서는 추후 따로 포스팅을 작성할 예정입니다.
- 소재 : 합성 소재가 많이 섞이지 않은 고품질의 면. 피부에 닿는 촉감이 좋아야 해.
- 컬러 : 라이트 그레이나 네이비가 좋겠어.
- 대학교의 이름이나 로고가 들어가있지 않을 것 : 대학 이름이 들어간 건 전부터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생각이 여기까지 구체화 되고 나니, 얼른 동묘로 출발하고 싶어졌다. 옷을 갈아입고, 단장을 하고, 현관문을 나섰다. 노랭이(뱀부의 바이크, 혼다 슈퍼커브110)에 올라타서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동묘 구제 시장은, 이전 무한도전에서 지디와 정형돈 씨가, 와썹맨에서 박준형 씨가 방문해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옷 뿐만 아니라 중고로 팔 수 있는 것이면 뭐든지 다 파는 시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동묘 근처에는 황학동 풍물시장, 광장시장 등 다른 유명한 구제 시장도 인접해있다. 나는 구제도 구제지만, 동묘 특유의 그 촌티나고 토속적인 분위기가 좋아서 한 때 자주 방문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도착해서 보니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은 것이다. 예전에 내가 다닐 때는 평일이라서 그랬는지,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어도 어르신들 몇몇이 보통 전통시장 만큼 계신 정도였는데, 이날은 일요일이라 그런지 애어른 할 것 없이 사람이 많았다.
예전에 내가 방문했을 때만 생각했더니 이런 낭패가. 천천히 느긋하게 둘러보려던 계획을 수정했다. 가급적 외부에서 슬쩍 보고 판단해서 괜찮은 것이 있으면 빠른 속도로 스캔해서 얼른 쇼핑을 마치고 돌아가는 것으로.
동묘에는 한눈 팔 것이 지천에 널렸는데, 다른 것 구경하고 싶은 걸 참느라 혼났다. 결국 이날 쇼핑은 빠르게 마무리 되었다. 내가 방문했던 곳의 위치 및 기본정보를 공유하고 싶은데, 블린이라 또 까먹고 사진을 못 찍었고 상호명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혹시라도 궁금하신 분이 계신다면 댓글로 말씀해주시면 가는 법을 자세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이 매장에서 발견한 미제 스웻셔츠(맨투맨)은 꽤 있었지만, 라이트 그레이 컬러에는 괜찮은 제품이 별로 없었다. 네이비 컬러 중에서 상기 조건을 만족하고, 나한테 피팅이 맞고, 디자인이 괜찮은 것을 고르니 남는 것은 두 벌. 둘 중에 무얼 살까 고민하다가 사진에 보이는 것으로 골랐다. 하지만 반전은 끝나지 않았었다. 점원분께서 내가 골라놓은 다른 걸 보시더니, 이건 안 입어보냐고 하셔서 입어나 볼까 하다가 ㅋㅋㅋㅋㅋ 그게 또 너무 마음에 들어서 결국 둘 다 구매... 날씨가 좋아서 싸게 드린다며 감사하게도 만 원에 주셔서 다행이지만, 가격을 떠나서 계획에 없는 소비를 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래도 이뻐서 행복한 건 맞아. 짧지만 즐거운 쇼핑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기 전 잠시 마스크를 벗고 사진을 찍었다.
이날의 원래 내 옷차림은 이러했다. 이 옷차림이 완성되기까지의 의식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그레이 울 팬츠가 입고 싶어! ➡️ 그런데 노랭이를 타야 하니 모자를 써야 돼. 모자는 플란넬 캡을 쓰고 싶다. ➡️ 이왕 이렇게 된 거 옷은 타이까지 매버릴까? ➡️ 그래. 그리고 다른 부분에서 힘을 빼자. 신발은 낡은 단화를 신자. ➡️ 흰 양말을 신을까? 근데 양말까지 가벼우면 너무 없어보일 거 같기도 하고... ➡️ 그럼 중간점에서 만나자. 어두운 아가일 패턴이면 괜찮겠지. ➡️ 가방은 들고 싶지 않은데... 그래도 포스팅 하려면 삼각대는 필요하고, 덜렁덜렁 들고 다니기도 뭐하니 그냥 가져가자.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 같지만, 물론 실제로는 저렇게 혼자서 중얼중얼 말을 한 것이 아니라 금방 끝났읍니다. 이날, 햇살은 아주 포근했지만 동묘까지 약 30분을 운전해서 오다보니 마냥 따듯하지만은 않아서, 돌아갈 때는 구입한 스웻셔츠(맨투맨)을 입고 가기로 했습니다. 맨투맨을 셔츠, 타이, 자켓과 매치한 것을 보여드리고 싶기도 했고요.
사진의 표정이 웃는 게 있고 웃지 않는 게 있는 것은, 초반 촬영 때는 의식을 못 하고 찍었다가, 갈수록 웃어야지 하고 의식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멍청하게도 새로 산 옷을 매장에서 위에 겹쳐입고 나와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원래 옷차림도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벗고 또 찍고, 다시 또 입고 출발하였습니다. 어찌나 귀찮던지... 아무튼 이렇게 해서 이날의 동묘 구제시장의 미제 빈티지 스웻셔츠(맨투맨) 쇼핑기는 여기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빈티지 스웻셔츠(맨투맨)의 디테일과, 제가 구매한 스웻셔츠(맨투맨)의 디테일에 관한 포스팅은 조만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동묘 구제시장을 가는 법을 올리고 오늘의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
동묘 구제시장은, 1호선, 6호선의 동묘앞역의 3번출구로 나가시면 바로 한 눈에 찾으실 수 있습니다. 비단 옷 뿐만 아니라 골목골목 재밌는 잡화상이나 정겨운 음식점도 많으니 잘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동묘시장 영업시간
월~토 10:00~ 17:00
일요일 11:00~17:00
영업시간은 인터넷에서 찾아본 바로는 아래와 같으나, 상인 개개인이 따로 영업하는 곳이고 좌판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곳이라 영업 종료 시간의 큰 의미는 없어 보입니다. 다만, 해질 때쯤 대부분의 가게가 마무리 되는 듯 하니, 점심쯤에 방문해 돌아보시는 것이 여유로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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